자연 한컷이야기
이제서야 꽃은 본질을 피운다
이재석
2011. 10. 18. 08:16
꽃은 빛을 잃고 잎을 잃어 자신을 드러낸다
향기가 지고 난 뒤, 자신의 본질을 보인다
벌레가 치고 시간이 치고
필연과 우연이 치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찢기고 말라버린 매무새
하지만 그제서야 꽃은 꽃이 된다
다시올 따뜻한 날 펼치기 위한 뜨거운 응어리를
칼바람에도 갈라지지 않을 굳건한 집념을
처음부터 말하고자 했던 자신을 이제서야 드러내며
잔바람에도 쉬 흔들리기만 했던 꽃은 비로소 자기가 된다
잉태는 아쉬움 없이 빛을 버린다
존재는 아쉬움 없이 잎을 버린다
그리고 약속은 아쉬움 없이 향기를 버린다
하지만 누구도 아름답지 않다 말하지 않으리라
꽃이 빛을 버리고 잎을 버리고 가슴을 드러낸다
향기를 떠나보낸 뒤, 마음을 드러낸다
그 자리에 서 있었던 이유와
내일을 향한 약속과
그 이상 아름다울 수 있는 소망을 보이며
이제서야 꽃은 본질을 피운다
꽃은 그렇게 해를 향해 간다
2011. 10. 18.
그리고 풍성함은 꽃을 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