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나의 가장 가난한 사치 - 그 곳에 내 마음도 둔다
[#Book_134-2011, 시, 나의 가장 가난한 사치] 그 곳에 내 마음도 둔다
제 목 : 시, 나의 가장 가난한 사치
글쓴이 : 김지수
출판사 : 페이지원
펴낸날 : 2011. 10. 4.
읽은날 : 2011. 12. 24. ~ 25.
그녀의 시 덕분에 나의 오늘은 발견이 되었다.
그녀의 시 덕분에 나의 오늘은 특별한 한 순간이 되었고
그녀의 시 덕분에 나의 오늘은 촉촉한 가족의 일기가 되었다.
김지수 그녀의 시는 하나하나의 말이 되어
사람들이 에세이라 칭하는 형식을 빌어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기억하리라.
모처럼 소장하고 마음이 지칠 때마다 들여다볼 책을 하나 누렸노라고.
그녀의 에세이는 그렇게 운율을 가졌다.
형식없는 에세이지만 누가 보던 그것은 시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명시 50편에 곁들여 늘여진 그녀의 말들
그것이 시가 아니라면 무엇에 시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그녀의 말은 시를 통해 생활을 연결한다.
놀라운 것은 그 생활들이 나의 생활들을 꿰뚫고 있다는 것이다.
노래란 것이 가장 강력한 속성이 그것 아닐까?
시 또한 노래이기에 그녀의 글은 나를 꿰뚫어 버린 것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나를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내가 얼마나 특별한지 알 수 있었고,
그래서 나는 지금의 촉촉함으로 나의 가족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마음이 비춰졌던 노래를 하나 나도 따라 읊어보려 한다.
그리고 그곳에 마음을 비춰두려 한다.
벽 - 정호승
나는 이제 벽을 부수지 않는다
따스하게 어루만질 뿐이다
벽이 물렁물렁해질 때까지 어루만지다가
마냥 조용히 웃을 뿐이다
웃다가 벽 속으로 걸어갈 뿐이다
봄눈 내리는 보리밭 길을 걸을 수 있고
섬과 섬 사이로 작은 배들이 고요히 떠가는
봄바다를 한없이 바라볼 수 있다
나는 한때 벽 속에는 벽만 있는 줄 알았다
나는 한때 벽 속의 벼까지 부수려고 망치를 들었다
망치로 벽을 내리칠 때마다 오히려 내가
벽이 되었다
나와 함께 망치로 벽을 내리치던 벗들도
결국 벽이 되었다
부술수록 더욱 부서지지 않는
무너뜨릴수록 더욱 무너지지 않는
벽은 결국 벽으로 만들어지는 벽이었다
나는 이제 벽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벽을 타고 오르는 꽃이 될 뿐이다
내리칠수록 벽이 되던 주먹을 펴
따스하게 벽을 쓰다듬을 뿐이다
벽이 빵이 될 때까지 쓰다듬다가
물 한잔에 빵 한조각을 먹을 뿌이다
그 빵을 들고 거리에 나가
배고픈 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줄 뿐이다
속리산에서 - 나희덕
가파른 비탈만이
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 온 나에게
속리산은 순하디 순한 길을 열어 보였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
아직 높이에 대한 선망을 가진 나에게
세속을 벗어나도
세속의 습관은 남아 있는 나에게
산은 어깨를 낮추며 이렇게 속삭였다
선을 오르고 있지만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 속에 갇힌 시간일거라고,
오히려 산 아래서 밥을 끓여 먹고 살던
그 하루하루가
더 가파른 고비였을 거라고,
속리산은
단숨에 오를 수도 있는 높이를
길게길게 늘여서 내 앞에 펼쳐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