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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 한컷이야기

2015 서울국제마라톤을 달리다

by 이재석 2015. 3. 16.

자의없이 도전하게된 마라톤 풀코스.

처음으로 풀코스를 만나게되는 2015 서울국제마라톤...

그날은 오고 말았고... 뛰고 말았습니다.

미쳤지... 내가 이걸 왜 뛴다고 했는지....

 

3:00

대회날이라고 별다르지 않네요. 기상시간만 되면 자동으로 떠지는 눈...

바로 스트레칭을 시작합니다. 

잠 설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푹 잤습니다.

컨디션 괜찮습니다. 준비물을 하나하나 챙기면서 화장실을 갑니다.

꿀바른 토스트 세장. 그리고 양갱 하나...

에너지 보충도 완료.

 

6:00

이제 준비 완료!!!

같이 뛸 형님이랑 친구에게 문자를 주고 받은 후 출발합니다.

아. 화장실 한번 더 가야 하는데... 아직 완전히 비우지 못했는데... 

좀 찝찝하긴 하지만... 더 지체할 순 없습니다. 

출발~!

 

7:00

오늘의 용사들 뭉칩니다. 세종대왕 앞에서 말이지요.

아 춥습니다. 춥습니다. 장난 아닙니다.

친구를 먼저 만나서.. 형님 왜 안오시지? 합니다. 그런데... 헐~

이미 복장 갖추고 짐도 맡기신 형님 등장...

형님 비옷 이거 입으세요. 

우리 형님 덜덜 떨고 계십니다. ㅋ...

그때 나오는 방송. 25분까지 짐을 모두 맡기랍니다. 

우리 둘도 서둘러 출전 준비를 합니다.

가슴에 밴드도 붙이고, 겨드랑이 사타구이 무릎.. 등등에 바셀린도 바르고...

에너지바로 마지막 충전도 완료합니다. 아.. 소변도 한번 더~ 

비장의 무기 양갱은 목장갑 속에 넣어둡니다. ㅎ

 

8:00

총소리가 납니다. 엘리트 선수부터 출발...

2만명 뛰는 거 맞아? 할 정도로 사람들이 없어보였는데...

이때되니.. 어디서 이렇게 나타났는지... 사람들이 개미때처럼 들어찹니다. 어깨를 부딪히면 조금씩 출발선으로...

그렇게 한 25분을 이동했네요.

저는 이런 대회 나온김에 회사 홍보 좀 할까 싶어서 택배상자를 머리에 쓰고 있습니다.

제가 특이해보였는지... 카메라가 오네요. 인터뷰도 한번 하고..

(그런데... 뛰다보니 이건 특이한 것도 아녔습니다. 정장 입고 구두신은 사람. 상감마마.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발레복.. 참.. 희안한 사람 많더군요.)

밀려서 밀려서 이동...

이제 비옷을 벗고 뛸 준비를 합니다.

E그룹 제일 후미.. 우리가 달리기 시작할 위치입니다.

 

8:25

몇 번을 한 다짐.. 다시 한번 더 합니다.

초반에 오버하지 말자. 초반에 오버하지 말자.

목표는 3시간 20분. 늦어도 3시간 30분까지만 들어오면 돼...

초반에 오버하지 말자.

처음 5키로를 1키로당 4분 50초로 끊을 생각입니다. 

자.. 이제 달려나갑니다.

 

3km

이건 뭐... 오락실입니다.

레이싱 게임... 사람 사이로 빠져나가기... 아오.. 이거 완전 스트레스입니다.

초반에 페이스 오버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뭐.. 뛸 수 있어야 오버를 하지요.

제가 선택한 코스는.. 신이 주신 길.. 갓길입니다. 

그나마 제일 낮더군요.

아... 페이스 계속 늦어집니다.

 

5km

5키로 뛰는데 25분이 넘었습니다. 페이스를 조금 올려야 겠습니다. 

10키로부터 페이스 올리려 했는데.. 안되겠습니다. 4분 40초 초반... 제가 생각한 이븐페이스.. 바로 들어갑니다.

레이싱 게임은 계속됩니다.

물을 주는군요. 아코.. 피해야겠습니다. 저 사람들한테 밀려서 더 늦어질 것 같습니다.

물 주고는 곳 마지막에 접어드니 한가해지네요. 연습삼아 저도 손에 한번 들어봅니다.

쬐끔.. 마시는 연습도 한번... 

 

10km

10키로를 접어드니... 그나마 뛸 공간이 생깁니다. 것도 잠시...

앞에 보이는 4시간 페이스메이커. 아... 페이스 메이커를 따르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또 정체 정체...

미치겠습니다. 뛰어나가야하는데... 갈 수가 없습니다.

 

14km

1/3 뛰었습니다. 지금까지 컨디션은 좋습니다. 아직 숨도 안차고 땀도 안나고 다리도 무리없습니다.

헉.. 근데 왠걸.. 배가 살살 아픕니다.

뛰다가 힘들어서 결리는게 아니고... 화장실이 가고 싶습니다.

아.. 아침에 한번 더 갔어야했어...ㅠㅠ

참습니다. 한 2키로 더 뛰니 괜찮아지네요. 휴우.... 다행입니다.

1키로당 4분 30초 후반대.. 이제 완연하게 이븐페이스로 들어섭니다.

 

17m

양갱을 뜯습니다. 지금 먹고 나면 30분쯤 뒤에 에너지가 될테니... 25키로 지점 오르막길을 생각해서 먹어둬야겠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다들 파워겔을 뜯습니다.

자... 이제... 을지로.. 청계천.. 좁은 길을 벗어납니다.

대로입니다. 속이 다 시원합니다. 맞바람은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멀찍히 떨어져서.. 마라톤 하는 기분을 느껴봅니다.

사실... 힘 아끼기 위해서 사람들 속에서 슬립스트리밍을 해야하지만... 할 수가 없습니다.

워낙 하위그룹에서 출발했다보니.. 저랑 페이스가 맞는 사람이 없습니다.

추월추월... 그렇게 달려갑니다.

3시간 40분 페이스메이커를 따라잡았습니다.

목표가 생기네요. 3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 따라잡기... 과연 만날 수나 있으려나...

 

23km

하프를 지났습니다. 러너스하이가 옵니다. 

땀도 살짝 맺히고... 다리는 자동뛰기 상태가 됩니다. 의식하지 않아도 4분 30초 후반대가 계속 이어집니다.

몸 상태는 아직 괜찮습니다. 군자교까지 이어지는 오르막도 별로 힘들지 않습니다.

 

25km

반가운 사람을 만납니다. 우리 계원인 경찰 형님...

간간히 이어지는 시민들의 화이팅도 좋지만... 아는 사람의 화이팅.. 그건 와닿는게 다릅니다. 

크게 화이팅 한번 외치고 다시 달리기에 집중합니다. 

 

27km

여기서 남겨뒀던 양갱을 다시 먹어줍니다. 35키로를 대비해야합니다. 마의 오르막...

그런데 마의 오르막은 둘째치고.. 여기 나즈막한 오르막이 장난 아니게 느껴집니다. 

아... 드디어 왼쪽 허벅지 뒷쪽에서 신호가 옵니다. 

슬슬 글리코겐이 떨어져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보폭을 좁히고 스윙을 빨리 가져갑니다. 체간달리기(상체로 뛰기)에 좀 더 집중해야겠습니다.

 

30km

양쪽 허벅지에서 모두 신호가 옵니다. 올때가 됐지요.

숨은 차지 않습니다만... 다리가... 다리가... 안돼안돼...

하지만 아직 페이스가 떨어지진 않습니다. 

이제 땀이 조금 흐릅니다. 

 

32km

10키로 남았습니다. 매일 점심때 산책하듯 뛰는 그 10키로...

정말 얼마안남았습니다. 발판 3번만 더 밟으면 됩니다.

ㅇ ㅏㅆ ㅏ~!

 

34m

잘못 생각했습니다. 풀코스 마지막 10키로는 평소의 10키로가 아닙니다.

거리가 줄어들지 않습니다. 시계보는 숫자가 잦아집니다. 체력이 딸리나봅니다.

물 묻은 장갑이 무겁습니다. 벗어 버립니다.

그래도 아직 페이스는 유지할 수 있습니다.

 

35km

아.. 이게 뭔가요...

한강 다리가 오르막길이었군요. 아.. 미치겠습니다. 요것만 넘기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퍼트하는거야.

쇼트 스피치 쇼트 스피치... 보폭을 줄이고 상체 반동으로 올라갑니다.

 

36km

스퍼트고 자시고... 오르막길 끝나고 나니... 다리 컨트롤이 안됩니다.

페이스가 늦어집니다. 4분 50초대.... 아오.. 미치겠습니다.

다리에 글리코겐은 이미 다 나가리... 

카보로딩으로 저축해뒀던 몸의 글리코겐과 팔반동으로 뜁니다.

아.. 10키로 참가자들... 걷는 분이 왜 이렇게 많은지.. 초반의 레이싱 게임이 다시 연출됩니다. 

미치겠습니다. 힘도 없는데... 에효...

 

38km

드디어.. 저를 제친 사람이 한 명 등장합니다.

만명도 넘게 추월하고 온 것 같은데.... 스퍼트하는 중년의 그분을 따라잡지 못합니다.

(대회 줄곧.. 저를 제친 분은 이분 한명이었습니다. 도저히 못 따라가겠더군요. 에고)

주저 않을 수 없지요. 이제 4키로 남았는데...

근데 왠걸... 20키로 보다 더 멀어보입니다.

다시는 풀코스 안뛰어... 아띠... 이 생각이 백만번은 더 듭니다.

그래도 체간달리기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페이스는 더 늦어지지 않습니다. 4분 40초대로 유지해 나갑니다.

 

40km

달리기를 감촉이 영 별로인 복공판 구간도 끝나고...

진짜.. 젖먹던 힘을 다해 봅니다. 세삼스레 먹을수록 힘이나님의 조훈과 마라톤 온라인의 정보들이 생각납니다. 

카보로딩 아녔으면.. 정말 탈탈 털렸을거라는 거...

마라톤은 훈련과 음식으로 뛰는 운동입니다. 진짜 진리입니다.

마라톤 준비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음식조절.. 그 진가가 발휘됩니다. 

 

42km

아... 돌아서니.. 주경기장 입구가 나타납니다. 완주를 축하합니다.. 라고 적힌 현수막이 보입니다.

순간 울컥합니다. 아... 다왔어 다왔어...

으아아아아아아..~!!!!! 저절로 소리가 질러집니다.

 

42.195km

경기장에 들어섭니다. 다리는 이미 제 다리가 아닙니다.

그래도 이대로 들어가면 후회할 것 같습니다. 제대로 한번 뛰어보지 못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마지막 200미터 질주로 마무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백미터 뛰듯이 미친듯이 뜁니다. 소리도 지릅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11:42

골...

다리가.. 풀립니다. 절름거립니다.

내가 왜 이 짓을 한겨...

너무 힘듭니다.

물받고 간식받고... 탄수화물 빨리 먹어줘야한다는 말이 생각나서 .. 안넘어가는 빵 조금 뜯어봅니다.

짐 찾으러 가는 길이 왜 이렇게 먼지요....

짐 찾아서 털썩 주저 앉습니다. 

춥네요. 일단 잠바만 걸치고.. 기록을 살펴봅니다.

3시간 17분... 목표달성... 아.. 기쁩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서브3를 목표로 했었습니다. 아무에게도 말은 안했지만....

연습하다보니... 이거 다칠수도 있겠더군요.. 그래서 하양조정.. 3시간 20분으로...

늦어도 30분까지... 이안에도 못들어오면 난 실패한거야..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다행입니다. 다행입니다.

3시간 17분.. 스스로에게 장하다 말합니다.

 

집에 전화하고... 카페에 페이스북에... 글을 남기고...

오늘 뒷풀이 장소에도 전화하고... 

10키로 뛰고 기다리는 후배에게 전화를 합니다.

아... 이 친구.. 정말 고마운 친구입니다.

가방도 들어주고 물도 떠주고.... 이 친구 아녔으면... 마무리가 정말 힘들었을 겁니다.

 

그렇게 제 풀코스 첫도전을 마무리합니다.

다시는 안뛰어... 그런 다짐으로 말입니다.

근데 말이지요. 

아침에 계속 마라톤만 검색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뛰면 상위그룹서 출발할 수 있으니... 시간 더 줄일 수 있을거야...

훈련 노하우도 생겼고.. 조금만 더하면 서브3 하겠는데...

미쳤습니다. 아직 다리 통증이 있는데 이런 생각을 하다니...

이래서 애를 둘 낳고 셋 낳는 것이겠지요.

 

오늘은 연가를 썼습니다.

마눌.. 애들 다.. 보내고.. 혼자 어제를 곱씹습니다. 

이제사.. .좋은 경험했어...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좀 쉬고... 다른 것들 챙겨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