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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 한컷이야기

마라톤 본능에 잡아먹히다.

by 이재석 2015. 3. 18.

절제, 금욕 그리고 끈기... 마라톤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 흔히 일컬어지는 요소들이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제일 필요했던 것은 저 밑바닥에 깔린 본능이었다.

 

2015 서울국제마라톤을 경험하며 수시로 곱씹었던 말이 하나 있다.

이건 진짜 사람할 짓이 못된다. 라는 것.

준비도 그렇고 달리기도 그렇고... 보통의 자연스런 인간와는 반대편으로 간다.

먹지 못하고 쉬지 못하고... 극한의 극한으로 나를 밀어붙어야 한다.


홍혜걸 의학기자의 강연이 생각난다. 

내가 아는 운동 중에 건강에 제일 나쁜 것은 마라톤이다. 마라톤은 사람을 너무 혹사시킨다.

뛰어보니 이 말이 맞다 싶다. 진짜 수명이 몇 년은 줄어든 느낌이다.

그런데 웃기는 일은 여기 있다.

그렇게 느꼈으면서도... 그렇게 욕을 했으면서도, 지금 나는 서브3 정복 노하우를 찾고 있다.

아내는 극구 말린다. 그렇게 하다가 빨리 죽을 것 같다고 말이다.

그런데 사흘이 지난 지금 한번만 더 해볼까 하는 마음이 다짐으로 변해가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날 이렇게 만들었을까?

딱히 꼽을 수 있는 매력을 찾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혹자는 힘든 준비과정을 견뎌내면 보람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인내 뒤에 찾아온 보람 보다 달콤한 것은 없다고 말이다..

그런데 나는 먹고픈 걸 못 먹는 게 짜증 났을 뿐... 흔히 뭘 참다보면 생기는 하루만, 이번 한번만... 하는 상투적인 다짐도 들어오지 않았다.

혹자는 달리면서 일생을 돌아보고 가족을 생각한다고 한다.

일상에 대한 소중함을 새삼 깨달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나는 손목에 찬 시계 초침에만 집중했을 뿐... 흔히 오래 걷다보면 들어오는 잡생각도 찾아오지 않았다.

 

바로 앞에 놓인 길만 보였고...

흘러가는 시간만 보였고...

먹을 수 없는 맛난 음식과 쉴 수 없는 여유들만 아쉬워 보였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쉬지 않고 뛰었다. 아니 더 빨리 뛰려했다.

그렇게 굶고 뛰고...

일상에는 전혀 쓸모가 없는... 한번의 마라톤을 위한 1회용 몸을 만들었다.

극한으로 조이고 조이면서...


왜 이렇게까지 해야하는지...

원인은 욕심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인정 받고픈 욕심. 

나를 증명하고픈 욕심.

이전의 나를 이겨보고픈 욕심.

그런 사회적 존재로서의 욕심 말이다.

다른 마라토너는 모르겠다만, 내 속에는 뜀박질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1퍼센트도 없다고 본다.

 

그렇다고 내가 한심스럽지도 밉지도 않다.

오히려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한순간이라도 원초적인 욕심을 완전히 충족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지금도 마라톤 정보를 검색한다.

내년의 동아마라톤, 올해의 춘천마라톤... 검색할 때마다 점점 더 가까운 일정들에 눈이간다.

그렇게 괴로웠음에도...

글리코겐 소진하려고 곡기를 끊었을때 수시로 찾아오던 현기증이 무서우면서도...

배터질때까지 맛없고 심심한 탄수화물 밀어넣던 카보로딩이 눈물났을 정도였음에도...

아쉬울 때 술 한잔 제대로 입에 댈 수 없었음에도...

 

아마 마라톤의 본능에 또 잡혀먹힐 것 같다.

그때는 지금과는 다른 원인 때문이리라.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든다만...

아직은 무엇도 확신할 수 없다.

아마... 조만간...

조만간 알게 되겠지... 조만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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